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페이지 정보
작성자 oreo 댓글0건 조회 9회 작성일 2025-04-21본문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 제공엄홍길 대장(65·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인이다. 그는 사상 최초로 히말라야 8000 고봉 16좌를 모두 완등한 역사적인 산악인이다. 1988년 해발 8850m의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초오유(8201m), 마칼루(8463m), 브로드피크(8047m), 로체(8516m), 다울라기니(8167m), 마나슬루(8163m), 가셔브룸 1봉(8068m), 가셔브룸 2봉(8035m), 안나푸르나(8091m), 낭가파르밧(8126m), 칸첸중가(8568m), K2(8611m), 시샤팡마(8027m), 얄룽캉(8505m), 로체샤르(8400m)를 모두 올랐다. 이 같은 업적에 힘입어 엄 대장은 2019년에는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선정됐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그의 도전 정신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준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2000년 K2 등반 당시의 엄홍길 대장. 엄홍길휴먼재단 제공태어날 때부터 산과 친숙했던 그는 의외로 ‘물 사람’이기도 하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 군 생활을 해군에서 한 게 계기가 됐다. 인천 바다에서 군 생활을 한 그는 정원이 13명 안팎인 작은 배를 탔다. 서해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을 검문, 검색하는 게 주 업무였다. 배 타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막내였던 그가 배 안에서 생기는 모든 잡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요리였다. 따로 주방장이 없던 작은 배였던지라 요리는 계급이 가장 낮은 사람이 하는 게 관례였다. 삼시세끼 10여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엄 대장은 “배를 타지 않을 땐 군 생활이 너무 편했다. 하지만 배만 타면 요리를 해야 했다. ‘맛이 있네 없네’, ‘간이 짜네 마네’하는 타박을 매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마스테” 엄홍길 대장은 요즘은 국내 산을 종종 오른다. 엄홍길휴먼재단 제공뱃사람 생활이 그리 길진 않았다. 그가 타던 배가 엔진이 불타는 사고가 나면서 폐선이 된 것이다. 할 일 없이 내무반에 주로 머물던 어느 날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 한 장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군 특수전전단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 제공엄홍길 대장(65·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악인이다. 그는 사상 최초로 히말라야 8000 고봉 16좌를 모두 완등한 역사적인 산악인이다. 1988년 해발 8850m의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초오유(8201m), 마칼루(8463m), 브로드피크(8047m), 로체(8516m), 다울라기니(8167m), 마나슬루(8163m), 가셔브룸 1봉(8068m), 가셔브룸 2봉(8035m), 안나푸르나(8091m), 낭가파르밧(8126m), 칸첸중가(8568m), K2(8611m), 시샤팡마(8027m), 얄룽캉(8505m), 로체샤르(8400m)를 모두 올랐다. 이 같은 업적에 힘입어 엄 대장은 2019년에는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선정됐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그의 도전 정신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준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2000년 K2 등반 당시의 엄홍길 대장. 엄홍길휴먼재단 제공태어날 때부터 산과 친숙했던 그는 의외로 ‘물 사람’이기도 하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 군 생활을 해군에서 한 게 계기가 됐다. 인천 바다에서 군 생활을 한 그는 정원이 13명 안팎인 작은 배를 탔다. 서해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을 검문, 검색하는 게 주 업무였다. 배 타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막내였던 그가 배 안에서 생기는 모든 잡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요리였다. 따로 주방장이 없던 작은 배였던지라 요리는 계급이 가장 낮은 사람이 하는 게 관례였다. 삼시세끼 10여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엄 대장은 “배를 타지 않을 땐 군 생활이 너무 편했다. 하지만 배만 타면 요리를 해야 했다. ‘맛이 있네 없네’, ‘간이 짜네 마네’하는 타박을 매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나마스테” 엄홍길 대장은 요즘은 국내 산을 종종 오른다. 엄홍길휴먼재단 제공뱃사람 생활이 그리 길진 않았다. 그가 타던 배가 엔진이 불타는 사고가 나면서 폐선이 된 것이다. 할 일 없이 내무반에 주로 머물던 어느 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