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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nion 댓글0건 조회 8회 작성일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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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전북 완주군 만경강 제방길에 화사하게 핀 벚꽃 아래로 자전거를 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만경강 제방길에 핀 벚꽃 뒤로 강과 습지가 보인다. 전북 군산·익산·김제·전주·완주 등 5개 지역을 관통하는 만경강 벚꽃길이 되살아났다. 한때 전국 최고의 벚꽃 명소로 꼽혔지만 2000년대 들어 최초 식재된 벚나무의 수명이 다하면서 일대를 찾는 상춘객의 발길도 뜸해졌다. 하지만 벚나무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전 구간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되면서 '벚꽃 라이딩' 명소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만경강 벚꽃길은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에서 시작됐다. 만경강을 따라 군산과 전주를 잇는 구간인 26번 국도는 일제강점기 시절 '전군가도'라 불렸다. 일제가 호남 평야에서 수탈한 작물을 수송하기 위해 1908년 닦은 한반도 최초의 포장도로였다.전군가도가 벚꽃길로 재탄생한 건 1975년. 전북 출신 재일교포들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성금을 모아 국도변에 벚나무 6,435그루를 심었다. 눈부시게 흰 벚꽃이 만경강을 따라 100리(39.27㎞)나 이어져 '100리 벚꽃길'로 불렸다. 전국에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자전거를 타고 만경강을 따라 흐드러지는 흰 벚꽃길을 달렸다.벚꽃과 물억새 보며 라이딩 한 시민이 만경강 북측 제방 벚꽃길을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탄 시민이 전북 익산시 만경강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만경강 벚꽃길은 26번 국도가 만경강을 건너는 만경교(익산·김제시)에서부터 강 제방을 따라 완주군 고산면 양화교 인근까지 약 30㎞ 이어진다. 대부분 번영로가 쇠락한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새만금 유역 생태 숲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심은 나무들이다.이 중에서 벚꽃 자전거길로 이름난 구간은 익산-전주를 잇는 만경교-삼례교 구간. 만경강을 기준으로 서쪽 구간이 구(久) 벚꽃길. 현재는 벚나무 밀도가 더 높은 동쪽 구간이 뜨고 있다. 강의 북쪽 제방길은 익산시와 완주군, 남쪽 제방길은 김제시와 전주시 관내다.개인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어디서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반세기만에 소장 부채 그림을 선보이는 ‘선우풍월’전을 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우봉 조희룡을 비롯해 오세창, 안중식, 조석진 등 근대 서화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김홍도의 ‘기려원류’로 그림에는 김홍도의 관서(글과 낙관), 스 승 강세황이 쓴 글이 있다. 간송미술관 제공 중인 출신 서화가 우봉 조희룡이 부채에 그린 난초 ‘난생유분(난이 돋아나니 향기가 있다)’은 붓글씨 쓰듯 툭툭 그은 난에서 서예의 맛이 난다. 난초는 그리는 게 아니라 서예처럼 쓰는 것이라 했던 양반 출신 스승 추사 김정희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그랬던 조희룡이 1851년 신안 임자도에 유배를 간 이후 그린 난초 그림 ‘분분청란(향기로운 푸른난)’에는 난이 잡초처럼 무성하다. 아마도 유배지에서 느낀 울분에 과거의 형식을 버렸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그림 반대편에는 스승 김정희가 물기를 없애 바싹 마른 붓으로 영지버섯과 난초를 서예하듯 그린 ‘지란병분(영지와 난초가 향기를 함께 하다)’이 걸려 있다. 아꼈던 제자 조희룡의 작품 세계 변절을 꾸짖는 것처럼 말이다.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성질이 급했나. 이제 막 봄꽃이 다퉈 피기 시작하는데 벌써 부채 그림을 내놨다. 여름을 앞두고 마련한 부채 그림 특별전이다. 제목은 ‘선우풍월: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이다. 선면(扇面·부채) 그림 전시는 일부를 선보였던 1977년 이후 48년만이다. 반세기 만에 갖는 이번 부채 전시에는 18세기를 호령했던 단원 김홍도부터 20세기 초 3대 스타 서화가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 그리고 서화 감식가 오세창, 20세기에 신문 삽화를 그렸던 관재 이도영의 작품까지 부채 그림 소장품 133점 중 55점이 나왔다. 김홍도, 김정희의 부채 그림 등 최초 공개하는 것만 23점이 된다.부채 그림 문화는 고려 때부터 내려왔다.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18세기 후반부터 특히 활발했다. 문인들끼리 선물로 주고받는 등 신분 과시의 역할을 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부채의 실용성에 글씨와 그림으로 예술성을 입히다보니 조희룡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 자체로서 조선시대 회화사를 보여준다. 특히 산수화, 사군자, 화조화 등 회화의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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