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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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furojoo 댓글0건 조회 4회 작성일 2025-06-10본문
2005년 8월14일 세바스치앙 살가두가 아마존 하류 알투싱구 보호구역 내 와우라 마을에서 열린 ‘콰루프’ 망자의 축제를 지켜보고 있다. REUTERS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이자 환경운동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사우가두)가 2025년 5월23일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가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 렐리아 와니크와 함께 설립한 ‘인스티투토 테라’는 성명을 내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다 공정하고, 인간적이며, 생태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며 고인을 기렸다. 향년 81.살가두는 1944년 2월8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아이모레스에서 태어났다. 열대우림이 무성한 곳이었다. 농장주였던 아버지는 8남매 중 유일한 아들을 법률가로 키우고 싶어 했다. 아들은 경제학을 선택했다. 대학에 진학한 살가두는 19살 때 건축을 전공하는 17살 여성 렐리아 와니크를 만났다. 젊은 살가두와 와니크는 브라질 군부독재(1964~1985년)에 맞서 싸운 혁명적 좌파조직의 열혈 활동가였다. 두 사람은 살가두가 상파울루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인 1969년 파리로 ‘자발적 망명’길에 올랐다.배우자 카메라 빌린 뒤 돌려주지 않은 경제학자1971년 파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살가두는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커피기구(ICO)에서 경제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가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쥔 것도 이 무렵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살가두에게 일종의 ‘계시’였다. 와니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건축을 전공하면서 과제를 하기 위해 카메라가 필요해 샀다. 어느 날 남편이 카메라를 빌려갔고,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은 사진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 처음엔 남편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했다. 함께 사진 전시회를 다니고 사진의 역사를 공부했다. 그렇게 사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싹텄다.” 1973년 세계은행이 일자리를 제안했다. 살가두는 와니크와 상의했다. 이미 마음이 멀리 가 있었다. 그해 살가두는 아내의 전폭적 지지 속에 프로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 지난 1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9일(현지시간) IAEA 이사회에 북한 영변에서 평양 근교 강선 핵 관련 시설과 유사한 특징을 지닌 시설이 건설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교도통신이 10일 보도했습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그로시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이사회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하고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일본 등은 이번 이사회에서 북한 핵 관련 활동에 우려를 표시하는 공동 성명을 낼 방침입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작년 9월과 올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물질 생산시설과 핵무기 연구소를 시찰했다고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시설 내부 사진도 공표했으나 두 번 모두 구체적인 위치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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