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2엄마 '되기'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걸음마를 하고 달리고 뛰게 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중략....그래서 모성이 부재하다거나 모서응ㄹ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쩐지 여성으로서의 결격 사유, 인간실격의 근거로 느껴진다. '그럼 애는 누가 키워요'를 당연히 묻는 사회에서는 엄마가 '노오력'을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지 노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중략...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가 말했듯 일은 "남성으로서의 경험" 즉 세계에서 나의 실존이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또 끝없이 반복되는 집안일과 달리 사회에서의 일은 비교적 창조에 가깝다. 실제 창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자기효능감을 적잖이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기대받고 있으며,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긴다.하지만 집안일은 창조와 거리가 멀다. 창조의 전제는 자유인데 집안일에는 조금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고, 내 사정에 맞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내거 생각한 것도 다 적혀있음.p.132"엄마, 호중구는 몸 마음이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기다려." 몸의 마음이라는 표현도 표현이지만 보채는 어른을 아이가 점잖게 어르는 상황이야 말로 모순적이었다...중략. 내 일이라고 내가 다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내가 그토록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세상 이치를 윤이는 이렇게 어린 나이에, 별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이렇게 글 잘 쓰고싶다."엄마, 가지 마. 제발 교대하지 마. 나랑 있어"p.126결국 이 글은 소재를 배신하고 말았다. 아이의 병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아이를 중심으로 한 진단-치료 종결의 연대기는 아니게 된 것이다. 오히려 투병 이휘의 새로운 이야기를 여는 서문이나 프리퀄에 가까워졌다. '퀴어 시간성에 관하여' 를 쓴 제인 갤럽은 "나 자신을 발견한 세계와 더 잘 교섭하기 위해." 또 "사고할 수 없도록 하는 상황"에서조차 정확히, 그리고 "계속 사고하기 위해"글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두고 일화 이론 (Anecdotal theory)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서 '일화'는 '숨은 일화 공개'등에 쓰인 통상의 의미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누군가 직접 들여주는 자신의 경험등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연속된 시간의 흐름 속에 사건들을 배치하는 내러티브와 달리 일화는 철저히 개인을 중심에 두며, 플롯처럼 인과관계를 중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일화를 이론과 결합하려는 시도가 바로 일화 이론이 된다. 일화 이론을 알게 된 후 나는 이번에 시도했던 읽다-생각하다-쓰다-산다의 슨환이 앞으로도 내게 유효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개인과 사회, 사랑과 정치, 이론과 경험, 인식과 실천이 더 이상 대립하지 않고 결합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도 발견했다.p.67진심 부러움.p.114그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분노의 대상은 무신경한 돌봄 제도가 아니었다. 대게의 경우,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는 했다. 남편이 내 의사와 감정을 부정할 때마다 고스란히 되갚고 싶었고, 자신의 뜻대로 나를 개조하려 들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인정받고 싶었던 나, 남편이 끝끝내 부정했던 나는 좋은 아내도, 훌륭한 엄마도 아니었다. 일하는 여성이었다.대여한 책이라서 밑줄을 그을 수 없어서 색인지를 붙이기 시작했더니 끝이 없다. 구절구절 다 너무 소중해.p. 82 결코 먼저 나서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육아 보조에 한정한다. 엄마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p.79그런데 이 체험에 동참하지 않고 부정하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돌봄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한국식 라떼파파의 태도가 바로 키치다. 독박육아의 헌실을ㅈ부정하고 말뿐인 가사분담, 공동육아를 앞세우며 좋은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행세하려는 허위가 바로 키치다. 그들은 돌봄이 어떤 것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끝내 모른다. 이 키치적 돌봄은 "앞은 파악할 수 있는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라는 키치의 특성에도 정확히 들어 맞는다. 모성이 타인이 만든 환상이라면, 부성은 스스로 만든 키치다.p.71p.68MZ세대 남성들의 연애 포기, 결혼 포기, 현상이 인 감소의 직접적 원인이기 때문에 이를 우선 과제로 해결하겠다는 모양인데, 남성 중심의 인구 재생산 외에는 도저히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성은 당연히 남성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존재라고 정부가 앞장서서 대상화하고 있다. 김치녀, 신도시맘, 맘충, 김여사, 돼지엄마같은 유령들은 바로 이런 편견을 먹고 자라며 실체를 얻는다. 급전직하하는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려면 왜 여성들이 결혼을, 출산을 하지 않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농촌 남성이 결혼을 못하거나, 구직중이 남성청년이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들 걱정하면서 왜 여성은 단 한 번도 연애나 결혼의 주체로 상정하지 않는 것인가.내 생각을 이렇게 잘 표현해 보고싶다.p.115"그래도 남편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그의 사랑은 오락가락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계산된 방식일 때가 많았어. 자신이 미리 결정해서 행동했고, 내 바람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지." 현대 여성들의 삶과 우정을 그린 최신 드라마 속 대사 같지만 무려 1861년에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