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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오늘(6일) 현충일 밀착카메라는 나라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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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fht43oso 댓글0건 조회 9회 작성일 20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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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오늘(6일) 현충일 밀착카메라는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나섰던 학생들, 학도병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나이에 전사한 이들은 후손도 없고 관련 자료도 부족한데다 추모비마저 외롭게 방치되고 있습니다.정희윤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기자]팔공산 서촌 지역 마을 청년 5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현충비를 찾으러 왔습니다.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 현충비에 대한 정보나 위치가 잘 나와 있지 않아서 이 초등학교 인근이라는 말만 듣고 이곳에 왔는데요.이 주택 단지로 들어가는 샛길로 조금 들어와 보니 저 멀리 비석이 하나 보입니다.주택가 한 켠 덩그러니 놓인 이 비석.가까이서 보니, 정면에 '현충비'라는 글씨가 보이고 태극 무늬도 있습니다.1962년, 이 마을 출신 학도병을 추모하기 위해 지금의 보훈청격인 대구지방원호청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세웠습니다.비석엔 당시 원호청장 이름까지 새겨져있지만, 이젠 방치된 신세입니다.10년 넘게 매일 이 동네를 오가는 택배기사도 현충비의 존재를 모를 정돕니다.[택배 기사 : 이게 현충비였어요? 마을을 표지하는 돌인 줄 알았어요. 올라오면 돌이 항상 보였고요. (지금은) 울타리 있잖아요. (원래) 없었어요.]어린 나이 참전해 자손이 없는 경우가 많은 학도병.세월이 흐르며 이런 '마을 단위 현충비'가 방치되고 있는 겁니다.대구 동구청 관계자는 "예산을 확보하는대로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정비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비슷한 경우는 더 있습니다.전북 전주시의 한 마을 뒷산.꽤 웅장한 크기의 현충비가 있습니다.전북지역에서 전사한 6.25 참전 학도병 500여명을 추모하기 위해 1962년 세워진 순국학도현충비입니다.전우를 기리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은 이곳을 들른다는 김창균 옹.6.25 전쟁 발발 3일 째 16살의 나이로 참전했던 당시 상황을 똑똑히 기억합니다.[김창균/6·25 참전 학도병 : 나보다 더 어린 사람도 있었어요. 인민군들 앞에 있을 때 그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총질할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나고…]코로나 이전까진 여기서 추모제도 열렸지만, 이제는 돈도, 사람도 없어 몇 년째 사실상 방치 중입니다.[하태승/6·25 참전 전사 학도병 조카 : 전쟁에서 성공한 거 뭐 이런 것만 클로즈업(강조)되지 학생들 그 절절한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객들이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2025.06.05. kmn@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임채영 인턴기자 = "이렇게 아픈 가슴은 전쟁은 없어야죠. 내 생애에도 없어야 하고 우리 후손에게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지난 5일 제70회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찾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이날 현충원에는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온 영유아부터 군인, 가족 단위, 고령층 전우회 등 남녀노소가 전시실을 구경하거나 참배하기 위해 묘비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을 보였다.6·25전쟁에 참전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장순자(75)씨는 4~5살 무렵이었던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쏟아진다고 했다.그는 "아버지 얼굴도 잘 모르지만 '어쩌다 나를 두고 돌아가셨을까'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세상 살면서 생각하니까 더 마음의 상처가 깊어졌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아버지가)휴가를 한번 왔는데 쪽박 모자를 쓰고 총을 메고 왔었다"며 "목포 역전에서 나를 안고 뽀뽀해 주던 게 생각이 난다"고 떠올렸다.장씨에게 현충일의 의미를 묻자 "6·25전쟁은 나라의 비극적인 전쟁이었지만 우리에게도 상처가 크다"며 "부모를 잃은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내 세대나 후세에나 절대 전쟁은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죽마고우였던 친구가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또 다른 참배객 경영진(70)씨는 "나보다 한 살 덜 먹었는데 엄청 친한 친구였다"고 추억했다.그는 "현충일 당일은 난리도 아니라서 조용할 때 미리 와서 친구한테 인사하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또 "이렇게 현충일에 추모하는 게 없어지면 안 된다"며 "영원히 계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월남전 유공자인 두 친구를 보러왔다는 박상우(78)씨는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안 오면 찝찝한 느낌이 있다"며 "심심하고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왔다 간다"고 했다. 또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니까 그립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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