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울=뉴스1) 이연주 기자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한국도 막판 협상을 위해 총력전에 나선다. 일본이 '데드라인' 전에 협상을 완료했다는 점,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 협상팀의 어깨도 무거워졌다.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전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장관은 미국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을 만나 상호관세와 품목관세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24일 방미길에 오른다. 구 부총리는 이미 미국으로 건너간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오는 25일(현지시간) '2+2 협의'에 나선다. 카운트파트는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다.외교·안보 라인도 총동원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미 방미 중이며, 조현 외교부 장관도 출국을 앞두고 있다. 박용만 전 두산 회장은 특사단장 자격으로 출국해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특히 '2+2 협의'뿐 아니라 주요 장관들이 방미 일정이 확정됐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실무진 차원에선 어느 정도의 공감대는 형성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주요국과 관세 협상을 속속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협상팀이 갖는 부담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이 대미 상호관세율을 당초 25%에서 10%포인트(P) 낮추면서 우리 정부는 일본 못지않은 협상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 일본의 협상 결과의 세부적 내용은 현재 파악 중에 있다"며 "우리 협상에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면 참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상호관세율은 25%다.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율을 소완 메따 사관이 지난 21일 캄보디아 프놈펜 영문에서 삶과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 스텅미언체이의 한 빈민가. 한때 도시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였던 이곳은 많은 이들이 깡통 등을 주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끼니를 놓치고 좁은 골목을 서성이던 아이들이 지난 21일 점심시간에 앞서 한 교회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교회 앞마당에 세워진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작은 택시)을 놀이기구 삼아 뛰놀면서 ‘까르르’ 소리 내며 웃었다. 13년 전 한국 구세군이 세운 프놈펜 영문(교회)은 지친 이웃들이 잠시 시름을 잊고 마음 편히 머무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지난해 117년 역사의 한국 구세군사관학교에서 졸업한 최초의 외국인 사관인 소완 메따(34) 부담임사관이 이 안식처를 지키고 있다. 메따 사관은 이날 프놈펜 영문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 저는 이곳의 고달픈 삶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며 “이젠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좌절하는 10대 소녀들, 꿈 없는 청년과 소외된 어르신들을 섬기고 싶다”고 고백했다. 간호사였던 경험을 살려 이들을 위한 진료소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다.메따 사관이 처음부터 이웃의 아픔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가족 부양 책임이 무거웠던 그는 군 병원 3교대 간호사와 한국어 강사를 겸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교회 출석은 한국 유학을 위한 현실적 수단이었다. 그는 “솔직히 처음 교회에 나온 건 한국어 실력을 늘리고 유학의 기회를 잡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메따 사관이 프놈펜 빈민가 가정을 방문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 한국구세군 제공 간호사 시절 만난 한 10대 소녀가 그를 하나님께 인도했다. 그는 “의무실에서 만난 열여섯 소녀는 ‘4개월째 생리가 없다’며 울먹이며 도와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막막한 마음에 조언했지만 실패했고, 아이는 곧 사라져 버렸다”며 “그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무력감이 제 마음에 깊은 부채감으로 남았다. 그때 하나님께 일하는 소녀들을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한 소녀의 비극을 넘어, 꿈 없이 방황하는 청년들의 현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 영문에 나오는 청년 50명 중에 자기 목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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